시콜다정

설날의 의미

mizzero 2022. 2. 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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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정의

설은 새해의 첫머리란 뜻으로,  음력 1월 1일로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신일(愼日)·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하는 것입니다. 이밖에 설을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에는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 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합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아 있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아쉬운 실정입니다. 

출처: 대한일보

 

설날의 어원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섦'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 두 번째 설의 어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입니다.

한편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게 됩니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에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납니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합니다.

설을 설명절이라고도 하거니와 설 명절은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을 설 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크게 여겼습니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한 날입니다. 곧 농경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보름과 8월 보름 추석은 또한 각별한 명절입니다.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는 점에서 보다 중시되어 대보름 명절이라고 합니다. 8월 보름 명절은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국가에서 여름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로 수확을 앞둔 명절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속의 설날

설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서 신라에 대한 기록을 보면  “매년 정월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 날 일월 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왕권국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입니다.

우리 문헌에도 설명절의 연원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 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합니다) 때 궁중에서 궁주(宮主)와 중의 간통 사건이 있어 이들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해마다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上午) 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달도(怛忉)라 했습니다. 달도는 설의 이칭이기도 하므로 설의 유래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해·상자·상오 일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에 해당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출처: 조선멤버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 秋夕), 중구(重九), 팔관(八關), 동지(冬至)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원단·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닙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전 시대보다 세시명절과 그 무렵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설이란 말이 설날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세(亞歲) 곧, ‘작은 설’이라 불리는 동지입니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면서 전통 명절인데, 설날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하듯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설로 여기는 까닭은 중국 후한시대(22∼220)에 동지를 세수(歲首)로 삼았던 데에서 근거합니다. 사실상 24절기는 동지를 0으로 하고 첫 기번(氣番)으로 소한, 두 번째 기번은 대한으로 하며 입춘은 3번이 됩니다. 동지 기번을 0으로 한 까닭은 역(曆) 계산의 출발을 동지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열두 띠로 일컬어지는 십이지를 말할 때 첫 달인 자월(子月)은 정월이 아니라 음력 동짓달이 됩니다. 그 후 섣달은 축월(丑月), 정월은 인월(寅月), 2월은 묘월(卯月)… … 등의 순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1895년부터 서양의 태양력을 채용하면서 이에 따라 양력설과 음력설의 논쟁이 되었고 일제와 광복 후 국가적인 유도로 양력설을 한때 지정하였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가 실제로는 음력설을 지냄에 따라 1985년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여 공휴일이 되었고, 현재는 설날 전후로 3일간 연휴로 지정하여 쇠고 있습니다.

 

 

설날의 세시풍속

설날을 비롯하여 각 세시 명절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원의 대상은 신(神)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되풀이되는 행사를 '세시풍속'이라고 합니다. 세시풍속은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세시풍속이 풍농의 기원과 예측, 풍흉을 점치는 점세(占歲), 농공과 풍농을 감사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을 갖게 되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사가 약화되어 농경의례로서의 성격도 거의 희박해졌습니다. 명절을 전후하여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정월, 설명절 기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는 까닭은 정월이 농한기인데다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기간에는 신과의 만남이 수월해져 인간의 기원 사항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날에 행해지는 세시퐁속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실학자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는 설날에 남녀가 모두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세장(歲粧)이라 하고, 친척이나 어른들을 찾아가 절하는 것을 세배(歲拜)라 하며, 오는 손님들에게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차례 지내기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십니다. 차례라는 말보다 정초 제사, 설 제사, 조상 봉사 등이라 하고, 떡국이 주가 된다 하여 떡국 제사라고도 합니다.(추석은 송편 제사라고도 합니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하고 있습니다. 

2. 세찬, 세주
차례 음식이나 세배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하는 음식을 세찬이라고 합니다. 흰떡을 이용한 떡국이 대표적입니다.  원일 음식으로 떡국 이외에 붉은 시루떡이 있습니다. 고사를 지낼 때의 시루떡은 붉은 팥시루떡을 쓰지만 차례를 지내는 시루떡은 붉은 팥시루떡은 금하기 때문에 거피를 한 팥을 사용하여 떡을 쪄서 사용합니다. 이밖에 인절미·전유어·빈대떡·강정류·식혜·수정과 등도 세찬으로 장만합니다. 세주는 맑은 청주이며 역시 차례상에 오르고, 데우지 않고 찬대로 마시는데 이는 봄을 맞이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있으며,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함께 마십니다. 

3. 세배
차례를 지낸 후에는 집안 어른들께 순서대로 절하고 새해 인사를 드리는 석을 세배라 합니다. 어른들의 한 해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효와 예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외부 출입이 어려웠던 조선 시대의 부녀자들은 몸종이 대신하여 문안하도록 하는 문안 비의 풍속도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보스톤코리아

 

4. 설빔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한다.『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열양세시기 』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습니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입니다.

5. 놀이
설의 놀이는 이미 섣달 그믐 무렵부터 즐기기 시작하여 대보름 무렵까지 즐기게 됩니다. 연날리기는 섣달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깁니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 보내고,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널뛰기·승경도놀이·돈치기 등을 합니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집안에서도 하고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하는 정초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입니다. 윷의 종류도 장작윷과 밤윷이 있고 놀이 방법도 다양하다. 윷놀이를 통해 그 해 운수를 점쳐보기도 하였습니다.

6. 덕담
세배를 받은 손위사람들이 소원 성취나 건강을 비는 뜻으로 해주는 말입니다. 말에 주술성이 있다는 연령 사상이 밑바탕으로 새해의 복을 기원함으로써 한 해의 복을 예측하여 축하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린이, 청소년문화재청, 대한 뉴스통신, 조선 멤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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